1988년 폴란드 파업
1988년 폴란드 파업(영어: 1988 Polish strikes)은 1988년 폴란드에서 노동조합, 부두노동자, 광부 등 1만 3천여명의 노동자들이 1981년 폴란드 파업에 이어 가장 큰 파업을 일으켰다. 폴란드의 경제는 완전히 마비되고 말았다. 폴란드 정부는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폴란드 노동자들은 3가지를 요구했다.
- 노동시간 단축
- 임금 인상
- 민주주의
이 세 가지였다.
파업의 결과
이 파업은 폴란드에서 1981년 파업과 더불어 가장 큰 파업이었다. 이 파업의 주도자 자유노조(솔리다르노시치)는 이 3가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. 결국 단 1가지인 첫 번째만 허용되자 폴란드 노동자들은 분노했고 또다시 파업을 일으켰다. 그러나 이 파업은 폴란드 경제 뿐만이 아니라 소련 경제에도 치명타를 입혔다. 소련의 외국인 노동자 중 거의 대부분이 폴란드 사람이였기 때문이다. 외국에 있는 폴란드 노동자까지 파업을 하니 소련은 치명타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. 어쩔 수 없이 소련과 폴란드 정부는 어느 정도의 자유화를 허락했으나 폴란드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원했고 1990년 폴란드의 새 정부가 들어서는 계기가 된다. 또한 공산주의의 붕괴와도 좋은 계기가 된다.
- v
- t
- e
공산권 국가의 붕괴
- 공산주의
- 반공주의
- 적극적 대책
- 냉전
- 사회주의 국가 목록
- 소련 붕괴 예측
- 레이건 독트린
- 소비에트 제국
- 소련과 테러리즘
- 교황과의 대립
-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
- 피플 파워 혁명
- 중국 특색 사회주의
- 페레스트로이카
- 글라스노스트
- 데모크라티야자치야
- 시나트라 독트린
- 도이 머이
- 라미즈 알리아(알바니아)
- 니콜라에 차우셰스쿠(루마니아)
- 미하일 고르바초프(소련)
- 라코시 마차시(헝가리)
- 에리히 호네커(동독)
- 카다르 야노시(헝가리)
- 밀로우시 야케시(체코슬로바키아)
- 에곤 크렌츠(동독)
-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(폴란드)
- 슬로보단 밀로셰비치(유고슬라비아)
- 마티외 케레쿠(베냉)
-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(에티오피아)
- 네 윈(버마)
- 드니 사수 응게소(콩고 공화국)
- 헹 삼린(캄보디아)
- 덩샤오핑(중국)
- 토도르 지프코프(불가리아)
- 시아드 바레(소말리아)
- 레흐 바웬사(폴란드)
- 바츨라프 하벨(체코슬로바키아)
- 알렉산데르 둡체크(체코슬로바키아)
- 이온 일리에스쿠(루마니아)
- 류강(중국)
- 우얼카이시(중국)
- 차이링(중국)
- 왕단(중국)
- 펑충더(중국)
- 탱크맨(중국)
- 요아힘 가우크(동독)
- 살리 베리샤(알바니아)
- 조리그 산자쉬렌긴(몽골)
- 블라디미르 부콥스키(소련)
- 보리스 옐친(소련 러시아)
- 뱌체슬라우 초르노빌(소련 우크라이나)
-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(소련 리투아니아)
- 쟈논 파즈냐크(소련 벨라루스)
- 젤류 젤레프(불가리아)
- 아웅산수찌(버마)
- 멜레스 제나위(에티오피아)
-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(에리트레아)
- 로널드 레이건(미국)
- 조지 H. W. 부시(미국)
- 교황 요한 바오로 2세(바티칸)
- 북경고교학생자치연합회(중국)
- 77 헌장(체코슬로바키아)
- 신 포럼(동독)
- 시민 포럼(체코슬로바키아)
- 알바니아 민주당
- 민주 러시아
- 평화와 인권을 위한 계획(동독)
- 사유디스(리투아니아)
- 평화로운 혁명
- 우크라이나 인민 운동
- 독립자치노동조합 '연대'
- 라트비아 인민 전선
- 에스토니아 인민 전선
- 폭력에 저항하는 대중(슬로바키아)
- BPF 당(벨라루스)
- 민족민주연맹(버마)
- 루마니아 구국전선
- 민주세력동맹(불가리아)
동구권 국가 | |
---|---|
소련 내 공화국 | |
기타 국가 |
- 1988년 폴란드 파업
- 4월 9일 비극
- 검은 1월
- 발트의 길
- 1987년–1989년 티베트 불온사태
- 1989년 톈안먼 사건
- 헝가리 국경철책 철거
- 폴란드 원탁회의
- 헝가리 원탁회의
- 범유럽 피크닉
- 동독 월요 시위
- 알렉산더 광장 시위
- 몰타 회담
- 독일의 재통일
- 리투아니아 1월 사건
- 바리케이드 사건
- 1991년 베오그라드 시위
- 8월 쿠데타
- 소련의 붕괴